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모즈루 사건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일본 해군은 1922년 [[워싱턴 해군 군축조약]]에 따라 주력함 척수가 제한받았기 때문에 보조함인 [[순양함]]ㆍ[[구축함]]ㆍ[[잠수함]] 등 보조함을 보강하는 것으로 대응하려고 했다. 하지만 1930년 [[런던 해군 군축조약]]으로 보조함까지 제한받자, 일본 해군은 기존 함선의 전력을 강화하고 조약의 제약대상이 아닌 기준배수량 600t 이하 함정들을 구축함만큼 중무장으로 건조하여 조약을 회피하고자 하였다. 그러한 이유로 [[치도리#s-8|치도리]]급 [[어뢰정|수뢰정]]을 만들었는데, 기준배수량 544톤짜리에 12.7 cm 50구경장 함포 2연장, 단장 하나씩에 533 mm 2연장 [[어뢰]]발사관 2개(어뢰 8발 탑재)로 엄청나게 과적했다. 배수량의 24%가 무장의 무게였고, 비슷한 시기에 건조되어 과무장함으로 지적된, 1,530t에 12.7 cm 50구경장 함포 연장 2문, 단장 1문, 90식 3연장 61 cm 어뢰발사기 3기(어뢰 18발 탑재)의 [[하츠하루급 구축함]]과 비교하더라도 무지막지한 과적이었다. 이렇게 함정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무장하느라 함의 복원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, 해군성 조함단장 후지모토 기쿠오 해군 [[소장(계급)|소장]]은 해군의 요구사항을 어떻게든 맞추어서 만들어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